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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3호]
005. 소심한책방 두 번째 책의 시작, 우리가 좋아하는 가게와 글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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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하는 이스트엔드 임정만 사장님과의 첫 만남은 이렇습니다.


이스트엔드에서 식사를 마치고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아내분에게 계산을 마치자 주방 안쪽에서 앞치마에 쓰윽 물기를 닦으며 약간은 어정쩡한 자세로 걸어 나와 작은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 하고 말했던 모습입니다.


그의 첫인상은 어쩐지 착해 보였고 약간은 소심한 듯 보였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등장이었으나 음식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왠지 요리만 바라보고 10여 년 정진했을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달까요 -


그 이후로 이스트엔드 블로그, 트위터에서 글로 접한 그의 분위기는 제가 느낀 첫인상과는 좀 달랐습니다.

글에서 살짝 냉기가 느껴진달까. 그의 글은 꽤나 시니컬한 면이 있더군요.

순해 보이는 첫인상과 시니컬한 글. 낙차가 크면 클수록 더 궁금해지는 법이죠.

그렇게 저는 5년 전부터 그들을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종달리 이웃으로 지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서로 가게에 자주 들려 식사를 하거나 책을 보면서도 우리는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어요.

그저 서로의 가게에 들러 ‘오늘도 역시 맛있네요’ 라든지 ‘신간 그 책 입고되었나요’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이었죠.


그러다 2년 전 어느 봄날 도쿄 시부야 사거리 스타벅스 앞에서 우리 다섯은 처음 만났어요.


- 저희 지금 지하철 내려서 히치동상쪽에 있어요.

- 아 저희는 길 건너 스타벅스 앞에 있어요.

- 네 그럼 저희가 그쪽으로 갈게요.


그들은 그 당시 신혼여행 중이었고 저희는 워크샵을 빙자한 여행 중이었어요.

시부야 시내에 다섯이서 들어갈 만한 가게는 잘 안 보이더라구요. 

몇몇 가게를 서성이다 어느 허름한 꼬치구이 가게에 무릎을 좁혀가며 둘러앉아 안부를 물었어요.

그러다 저희 책방에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드렸고, 그들은 책을 만들어볼까 하고 모아둔 원고가 있다고 하셨죠.

그렇게 시부야 어느 골목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시작되었어요.


책방 직원으로서 가장 큰 즐거움은 그의 글을 가장 먼저 읽어볼 기회가 주어졌다는 거예요.

지난 프랑스여행 때 저는 큰 비밀을 간직한 미스터리한 사람인 양 그의 글 속 파리를 떠올리며 거리를 걷곤 했어요.

‘저런 카페에 앉아서 빨대로 레몬을 꾹꾹 눌러 콜라를 드셨겠군.’


그리고 한적한 프랑스 남서부 아르캬숑의 한 숙소에 도착해 제일 먼저 빨래를 돌리고 널며 또 작가님 생각을 했답니다.

여행지에서 빨래를 돌리고 너는 행위를 통해 작은 일상성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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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쪽 종달리에서 제주 서쪽이나 남쪽을 가는 일은 마치 서울 - 부산 간의 이동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 정도로 마음의 거리가 먼 만큼 제주 서쪽이나 남쪽에 가는 일은 일 년에 몇 번 없는 이벤트예요.

일 년에 한두 번 서쪽에 가면 저는 꼭 ‘카페 그 곶’에 들려요. 언젠가는 ‘카페 그 곶’에 가려고 서쪽에 간 적도 있어요.


얼마 전에 저는 금능리에서 수원리로 자리를 옮긴 그 곶에 처음 다녀왔어요.

그 이후로 저는 ‘본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카페의 본질은 커피(음료)가 맛있고 무언가를 하기에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곳이고

식당의 본질은 음식이 맛있고, 밥 먹기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곳

책방의 본질은 읽고 싶은 책이 많고, 책 읽기 편한 분위기를 제공해주는 곳이지요.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저는 방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생활하고 지내는데 편안한 곳이 방과 집의 본질이겠지요.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 트렌드 등을 생각하며 고민했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깊어졌습니다.


이스트엔드, 카페 그 곶, 소심한책방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 ‘본질’을 위해 무던히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소심한책방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꾸준히 소개해드리기 위해 지금처럼 느리지만 마음을 다할 거예요. 

느리고 부족한 저희 소심한책방에서 지난 2년 동안 마음을 담아 준비한 두 번째 책 <당신은 당근을 싫어하는군요 저는 김치를 싫어합니다>입니다.




글/사진 요정3호

2019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