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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
40대 아저씨의 소심한책방 업무 적응기





첫째 책방근무


군대를 제대하면 예비군에 편제 받는다.

예비군 편제란 

예비전력으로 언제든 유사시 현역병의 임무를 하는 것이다. 


마스터H 부재로 신입 책방요원이 되었다.

오늘은 실전배치 첫날이었다.

상쾌한 출근을 하려 했으나 이게 웬걸 몸살기운이 돌았다.

나오기 싫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요정3호와 약속한 

30 출근미팅에 지각을 하였더랬다.


오한과 몸살 기운에도 버텨보려 했으나 

오랜만에 만져보는 컴퓨터와 익숙지 않은 

책방의 레퍼토리를 익히느라 

몸은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갔고 보다 못한 요정3호는 조퇴명령을 하였고 냅다 명령을 받아들여 

응급실로 달려가 수액과 주사를 맞았다.



둘째  


다행히

몸살기운이 날아가고

김밥 한줄을 씹으며 출근

불을 켜고 책방 바닥을 청소하고 있자니 요정3호가 출근했다. 


수심 낮은 곳에서

밀어주는 강습을 받은

혼자 라인업에 나가 보드 위에 앉아 바다에 둥둥 있던 

방향전환도 되고 중심도 어려워 

기우뚱 기우뚱 풍덩 빠지던 

서핑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났다.

경험은 역시나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했던가

어제 하루를 경험했다고 무언가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부랴부랴 마감을 하고 

오늘은 짧은 근무일 동안 요정3호와 함께하기로  

요가 첫날!

평대바당 자리한 요가원엔 이미 회원들이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어색한 기운을 한껏 들이마시며 

자리에 앉아 눈치껏아사나 따라했다. 


가부좌 다리에 피가 안통하고 

손이 부들 떨리기도 하면서 

잡생각으로 가득한 명상 아닌 명상을 하면서 

시간여의 생애 요가수업은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오늘 무언가 새로운 보았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을 무덤덤히 몸으로 체득했다는 것에 

나에게 위로와 위안을 보내며 

헤드라이트 한쪽 나간 오래된 차를 몰아

어두컴컴한 1132도로를 달려 집으로 향했다.



셋째 날 책방근무


안개 같은 미세먼지가 제주 하늘을 뒤덮었지만 

바람도 없고 

날씨도 포근한 무언가 어제와는 다른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책방 문을 열고 보리차를 끓이며 초를 켜두고 뒤돌아서 오디오에 씨디를 돌리고 조명을 켜니 

무언가 생활인의 아침을 아주 오랜만에 느껴 보는 미묘한 설렘이 일었다.

역시 삼세번이라 했던가 상쾌한 일째 날이다.


본래부터 아침형 인간이지도 않았고 

루틴을 가진 일을 하거나 그런 성향도 아니었지만

생활인으로서의 감정은 인류가 유목과 사냥에서 농경으로 정착하면서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디엔에이가 아닐까란

생각의 꼬리 끝에 

나에게도 태어나 살아온 세월의 그람(g)이란게 있나 보다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코끝을 스쳤다.


손님들도 여유롭게 오고 가며 어제보다 익숙해진 책방풍경에 나른하기까지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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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날 책방근무


30대가 넘어서면서

쓰기에 대한 힘듦이 있었다. 


학부 시절 

야부리까던 개똥철학과

어떤이즘

나름 진지했던지성 대한 갈망은 

세월이 지나 퇴색하고 

퍼마시느라 등한시했던 동안의

자책의 발로로 무엇이라도 

사고하고 써야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아무것도 읽기 싫어지고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표지가 담백했던 

문학과 지성사시선 시리즈를 독파해본다든지

흑백이 명확하던 시절의 

창작과 비평 어려운 평론들을 쥐뿔도 모르면서 

핏대서며 선후배들에게 강론한다던지 

민음사 세계사적 작품의 객관적 지평들을 떠벌여 본다던지 하는 

나름의 스스로에 대한 낭만성으로 버텨온 

나의 20대에 대한 흐릿한 기억들이 

묘하게 살아나는

8일간의 짧은 책방 근무 마지막 날이다. 


나는 말레이시아로 날아가 봄이 오면 

제주로 온다. 

그때까지

냄새 가득한 공간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나에게 아직 남은 책과 사람에 대한 

애정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p.s - 인내심과 애정으로 지도편달 해준 요정3호에게 감사합니다.




소심한 형님

사진 소심한 요정3

2019 3 16